[인터뷰 데뷔 vol.02]

20년 직장 퇴사 후 주부가 되어,

상상도 못 했던

스타트업 창업을 하기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도전'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말만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기 마련, 실패했을 때를 위한 대비책도 세워야 하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도 싸워 이겨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줄어들 수 없는 '나이' 역시 큰 장애물 중 하나이다. 용기와 열정이라는 갑옷을 입고, 무턱대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기에는 나의 나이가 무겁고, 짊어진 현실이 무겁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불확실성의 바다로 자신을 내던지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애초에, 그들이 태생적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긴 한 것일까? 어쩌면 도전이라는 것도 타고나야 하는 선천성의 영역은 아닐까?


끊이질 않는 물음표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앱 '나디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CEO, 최자인님을 인터뷰했다. 20년 차 직장인, 주부, 박사 공부, 스타트업 창업까지- 변화무쌍한 삶을 살 수 있던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으로 첫걸음을 딛는 것이 어려운 당신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용기가 될 것이다.


Ep.01

사소한 계기, 사소하지 않은 결과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가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나를 위한 오디오, ‘나디오’라는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최자인이라고 합니다."


- 지금까지 거쳐온 직업이나 도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도전이라는 단어를 꺼내주셔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에요. 저의 DNA는 도전인 것 같아요.


저는 한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제작팀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임원까지 오르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거기서 좌절을 맛보고 20년 다닌 회사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도전이 시작되었어요.


처음 카피라이터로 활동할 때부터 저의 꿈은 오로지 CD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CD가 되고 나니까 ‘이제 뭘 해야 하지..?’ 싶더라고요. 직업을 목표로 잡았던 탓인지, 목표를 이루고나니 갈피를 잃어버렸어요.


그러다가 30대 후반에 시도한 것이 박사 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시작하는 거였어요. 사실 이 선택은 그리 나쁜 도전은 아닌데, 좋은 도전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나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시작한 공부였거든요. 


공부를 한 3년간 했는데, 이렇게 계속 공부만 하며 끝까지 가는 삶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2년 동안 나를 찾아가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은 뭔지, 직업이 아닌 나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지금은 결국 스타트업의 CEO가 되어 있네요."

- 창업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직 박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나.. 어느 날 날씨가 유난히 좋았어요. 그날 도서관에서 자료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창업경진대회 공고가 뜨더라고요. 발표장이 춘천이래요. 공고를 보는 순간 춘천에 한 번 놀러 가고 싶어지는 거예요.


‘춘천이라고? 날씨도 좋은데 춘천?’


이러면서 제안서를 썼는데 1차 합격됐다고 발표를 하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운전을 해서 목표 없이 춘천까지 가기는 좀 그랬거든요. 그렇게 발표를 했는데 우수상인가 받아서 상금으로 500만 원을 받게 됐어요.


그렇게 받은 상금으로 꼭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길래 급히 앱 기획자나 개발자를 외주로 찾아 ‘삶이 오다’라는 앱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 춘천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지금의 앱까지 만들게 된 거네요.


"그렇죠. 그 경험으로 지금까지 온 거죠. 그때 앱을 만들어본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나디오'가 만들어질 수 있었네요. ‘창업을 하겠다!’라는 굳은 의지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춘천에 놀러 가고 싶다 그런데 이왕 가는 김에 뭔가를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해주었어요."


Ep.02

상상조차 못 했던 창업을 하게 되다


- 직장인, 박사 공부, 창업. 이 세 가지는 얼핏 보기에는 서로 독립적인 분야 같은데요. 그렇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실 때 막막하거나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완전, 완전 두려웠어요. 특히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가 되었을 때 두려움이 가장 컸어요.


20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추호의 아쉬움도 없이 관두긴 했는데.. ‘이제 그러면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건 좀.. (미소지으며 잠시 주저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데, '둘째를 가져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 당시 저에게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직장 생활, 아니면 가정뿐이었거든요. 아이를 가진다면 적어도 20년은 할 일이 생기니까 둘째를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창업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더 이상의 바운더리를 넓히지 않고 정해진 프레임 속에서만 계속 할 일을 찾으려 하니까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죠. 현타가 많이 왔죠. 그 당시에 제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겉으로는 항상 즐거워 보이니까요."

- 직장을 관뒀을 당시만 해도 창업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 해봤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CEO가 되셨잖아요. 그렇게 나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의 나'는 고민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Doing is learning(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이라는 표현이 있듯, 저는 직접 시도해보고, 아님 말고 하는 성향이었어요.


이런 모습이 원래의 저였는데, 직장 생활을 20년 동안 하며 너무 안전주의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 때문에 나 스스로의 가능성조차 한계를 지을 때가 있잖아요. '나이 50대에 뭘 한다고?' 이런 것처럼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계속 생각했어요.


나의 10대는 어땠지?

어차피 가진 거라고는 두 주먹밖에 없었잖아.

지금은 뭘 그렇게 한가득 움켜쥐고 있는 거야?

어쩌다가 이렇게 직장 생활을 하며

'안정'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나를 가뒀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유년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어했어요. 결국 지금의 저는 'back to the basic', 즉 저의 10대 때 모습, 나의 origin으로 되돌아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 도전을 하고 싶어도 책임져야 할 아이와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망설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CEO로서의 역할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시나요?


"요즘 MBTI가 유행하죠? 저는 ENFP거든요. ENFP들이 워크 라이프 밸런스(워라밸)를 잘 맞춰요. (웃음) 저는 최소한 내가 어디까지는 견딜 수 있다는 선을 그어놨어요. 사업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렇고요.


예를 들어서, 7시에는 집에 가서 아이 밥을 챙긴다. 이런 식으로 리미트(한계)를 다 정해놓은 거죠. 저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균형 감각인 것 같아요. 어느 한 분야를 끝까지 깊게 파고들며 몰빵을 하지는 못해도,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는 있어요. 


그런데.. 이런 점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고민을 하게 하는 것 같긴 해요. 직장 생활은 균형 감각이 중요한 직업이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사업을 함에 있어서 ‘이쯤 하자’라는 마인드가 괜찮은 건지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원래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점차 그릇이 커져가고 있다고 느껴요. 비즈니스를 위해 안전장치를 조금씩 조금씩 풀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은 3년 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죠."


일반적으로, ‘창업’이라는 분야는 위험 지향적이고 위험을 감수할 만한 그릇을 갖춘 사람들만이 뛰어드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자인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은 안전지향적인 사람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로 와닿았다.


Ep.03

그녀가 스트레스를 지배하는 방식


- 회사일과 집안일까지 돌보다 보면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쌓일 텐데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저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아요. 그게 제가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자기가 힘들 때 그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점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반신욕, 명상, 사우나 가는 것, 맛있는 거 먹기, 산에 가는 것..  반신욕 같은 경우는 20년째 꾸준히 하고 있어요.


아 맞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잠이요. 우리 엄마의 교훈, ‘자라’.


저는 잠을 굉장히 잘 자요."


-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고민이 많아도 잠을 잘 주무시나요?


"예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너무 슬플 때, 밤새 센치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볼까 싶었는데 바로 잠들었어요. (웃음) 그 정도로 잠이 많았고, 그 덕분에 행복하고 긍정적일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전날 머리 터지게 고민했던 것도 잘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불현듯 해결책이 떠오르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카피라이터 시절 때, 침대에서 카피를 쓰다 보면 어느새 잠들어서 볼펜이 침대에 다 묻어있곤 했어요.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 회사에 가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들이 마구 떠오르는 거예요.


뇌과학 책을 읽어보니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뇌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가 굉장히 과학적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자기가 힘들 때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지를 아는 것도 삶의 소중한 애티튜드 아닐까요?"


Outro

도전이 겁나는 당신에게


-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이 망설임을 끝내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한 마디를 해준다면?


‘결과를 생각하지 마라!’ 


"만약 지금 새롭게 창업이나 어떤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결과를 계산하다 보면 답이 안 나와요. 제가 인터뷰 콘텐츠로 유튜브를 시도해본 적도 있는데요. 지인을 끌어모아도 구독자 300명 정도가 한계였어요. 이 당시에는 10,000명을 모으려면 십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요. 300명에서 1,000명 되기는 어려웠는데 1,000명에서 10,000명 되는 건 불과 한 달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었거든요.


이성적 논리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아무리 머리 붙잡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는 거예요. 인스타를 관리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오늘의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감동은 분명히 전해질 거예요.


요즘 챗 gpt로 말이 많잖아요. 작년에는 이런 상황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렇게 하루하루 바뀌는 세상 속에서 생각만 하다가는 답을 찾을 수 없어요.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대부분 결과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가끔 ‘2023년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오늘 할 일에 다시 집중하려 노력해요.


그래도 실패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가 좋아하는 인용구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카피라이터였다 보니까 문장을 많이 모으는데요. 작은 아씨들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저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에요.


지금의 고난과 실패는 훗날의 즐거운 이야기가 될 거예요. 만약 사업에서 실패를 하게 되더라도 그 또한 저에게는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에요.


절대 인생에 있어서 값어치 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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