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사별과 1번의 이별.
죽음교육지도사와 라이프 코치로서의
삶을 살기까지
죽음학을 공부한 뒤, 죽음교육지도사와 라이프 코치로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빛과 어둠으로 비유되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그녀는 동시에 다룬다. 빛이 들면 어둠은 물러나고, 어둠 속에서는 빛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떻게 죽음교육지도사가 라이프 코치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일까?
생명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이의 모습이 궁금해, 그녀의 저서 ‘나이답게가 아니라 나답게’를 읽어보았다. 흔들거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몰입해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을 만큼 쉽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
그러나 덤덤한 문장에 배어 있는 시간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과 상실. 한 사람이 충분히 파괴될 수 있는 경험들이 담백히 담겨 있었다. 동시에,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취미와 직업을 누리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생기가 느껴졌다.
4월의 어느 날, 사랑스러운 벚꽃잎 색의 정장을 입고 온 그녀를 만났다. 봄에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유한한 시간의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죽음이라는 주제가 꽃피우는 순간.
Ep.01
오늘에 충실한 삶의 비결
-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폭넓은 직업과 취미를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라이프 코치, 죽음교육 지도사, 작가, GYB 대표, 재즈, 플라멩코, 여행.. 이토록 알찬 삶을 살아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렇게 많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못 벌기 때문에 직업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네요. (웃음) 그래서 저는 항상 ‘프리랜서의 탈을 쓴 백수’라고 표현해요. 본업은 열심히 노는 것, 부업은 뒷모습 그림을 그려서 팔고, 강연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제가 올해 딱 60이에요. ‘이 나이에 뭘 하겠어’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는 그냥 다 해보는 편이에요.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면 일단 다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해보면서 그중에 재밌는 것을 찾으면 되고요.
60에 시작해 70에 무엇을 이룬다 한들 늦지 않잖아요. 요즘은 백화점 문화센터, 평생교육원, 주민센터 등 무료나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취미랑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요.
직접 시도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것만 보면서 ‘난 저렇게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야.’ ‘난 글을 못 써.’ 이러는데,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피카소처럼 한 작품에 몇 억 받고 팔 거 아니잖아요? (웃음)
제일 큰 문제는 비교예요. 저도 원래 노래 못 해요. 그런데도 재즈를 부르러 무대에 올라가기도 해요. 내가 돈 받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취미로 내가 돈 내고 하는 거니까요.
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때려치우면 되고요. 라이프 코칭을 할 때는 자신이 젊었을 때를 돌아보라고 이야기해요. 대학생 때, 아니면 더 어렸을 때 무엇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는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쪽 분야에 다시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저는 이런 생각으로 이것저것 다 해보며 살고 있어요.”
- 지금과 같은 태도로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기까지 겪어 오셨을 일들이 궁금해집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동생의 자살이 가장 컸죠. 이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라이프 코칭을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닌데도 이런 곡절 덕분에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요. 진정성 있게 상담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요.
그다음은 이혼이에요. 민사소송과 스트레스로 엄청 힘들었는데, 이런 경험에서조차 배울 수 있는 게 있더라고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무슨 일이 생겨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힘들 때 무너지는 사람이 있고, 오기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더라고요. 자기애가 많은 건지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징징거리고만 있기에는 나의 인생이 아깝기 때문에 더욱 잘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헤어지고 나서도 더 예쁘게 살아야겠네? 피부과 가야겠다’ 이런 식으로 오기가 발동한 상태이기도 하고요.”
- 만약 그 두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고 계셨을 것 같나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있을 것이고, 좀 더 안하무인이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겪지 않았다면 좋을 일이었겠지만,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면서 내 인생을 아낄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겠지요.”
긍정적이고 알록달록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녀의 삶은 동생의 죽음과 남편과의 이별이라는 상실을 딛고 쌓아 올린 삶이었다. 죽음과 상실.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경험은 그녀의 삶에 어떤 모습으로 녹아들었을까?
Ep.02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순간
-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은 그대로 직면하기에는 거대합니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며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 애도의 과정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오래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저도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으니 서툴렀지요. 죽음학을 배우고 난 뒤, 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우울증 환자처럼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사람도 안 만나고, 겨우 만나도 웃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그런 순간들을 스스로에게 허락했어요. 감정도 바닥을 쳐야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닥이 어디 있나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6개월 동안 억지로 힘을 내려는 노력 자체를 안 했어요.
그러다 해가 넘어가고,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이번 해 3월부터 다시 정신 차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힘들면 힘든 대로 놔두세요. 슬프면 슬픈 대로 놔두시고요.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자신에게 허용해 주세요.”
- 작가님의 저서 <나이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속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겪고 나를 잃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 나를 잃는 것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한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게 상실이잖아요. 빈자리가 생긴 만큼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평소와 같지 않은 나의 모습에 ‘나를 잃었다’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내가 왜 이러지?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당연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평소와 같을 수가 있겠어요.
한 번은 40대 정도 된 남자가 물어보더라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는데,
우리 엄마는 언제쯤 괜찮아지실까요?’
안 괜찮아져요.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떨린다. 정적이 흐른다.)
어떻게 괜찮아져요. 안 괜찮아져요.
그냥 참고 살아가는 거죠.”
-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
“한 마디를 해주기는 힘들어요. 똑같은 경험을 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몇 마디로 위로하는 것이 오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그저 제가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있을 때 잘 하고, 임종 한순간에 목매지 말고, 생사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물론 말이 쉽죠.
고통스럽죠. 슬프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복잡하고, 몇 년이 지나도 힘들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잖아요.
슬프면 슬픈 대로 자신을 잘 다독여주고 잘 돌봐주세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슬퍼해. 이러면 안 돼. 힘을 내야 해.’ 하면서 스스로를 더 괴롭히지 마세요."
Ep.03
죽음학: 잘 죽기 위해 잘 살기
- 죽음학이라는 학문이 친숙하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학문인가요?
“죽음학의 명제는 ‘누구나 내일 죽을 수 있다.’라는 거예요. 즉, 내일 당장 죽을 수 있으니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죽음학의 목적인 것 같아요.
죽음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장기기증 준비, 유언장 준비, 연명치료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는데, 오히려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 죽음학이에요.”
- 어쩌다가 죽음학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가족들의 죽음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최초의 사건은 아버지의 죽음이었어요. 아버지는 편하게 돌아가시지 않고 뇌출혈로 쓰러져서 6년 반 동안 병상에 계셨어요.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이때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너무 생생히 지켜본 탓인지 그때부터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우연히 고려대학교에 죽음교육연구소가 있고, 거기서 죽음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죽음교육지도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됐고, 지금은 ‘인생리셋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만들어 죽음에 대한 개론 수준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말해도 도대체 무엇을 하는 수업인지 와닿지 않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한 마디로, 저는 일종의 전도사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죽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 주고, 죽음이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편히 논할 수 있고, 생각해 봐야만 하는 주제라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게 그거예요. 저도 아들이나 친구들과 평소에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요.”
- 인생리셋 프로그램에서 하는 활동 중 소개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부고 기사나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요. 인상 깊은 점은 내용들이 다 비슷하다는 점이에요. 더 많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거나, 더 큰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낼걸’ ‘친구들에게 연락을 많이 할걸’ ‘일을 좀 덜 열심히 할걸’ ‘자연을 더 많이 느껴볼걸’. 이런 것들은 다 매일매일 할 수 있고,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하지 않고 죽기 마지막 날에서야 후회할까요?
유산이라는 건, 물질적인 것만 뜻하지는 않거든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따뜻한 추억을 남겨주는 것도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아들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어 남겨놔요.
더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지, 어떤 후회를 하며 죽게 될 것 같은지,
그러려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꿈꾸는 이상적인 죽음이 있으신가요?
“나의 집에서 살다가 나의 집에서 죽고 싶어요. 작년 6월에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집에서 임종하셨는데, 집에서 돌아가시면 절차가 복잡해요. 과학 수사대도 오고, 119도 오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거치지 않아도 될 과정들을 많이 거쳐야 해요.
그럼에도 제가 바라는 건 우리 엄마처럼 요양원에 가서 고립되지 않고 나의 집에서 살다가 나의 집에서 죽는 거예요. 우리 엄마도 마지막 순간에 응급실로 향했다면, 응급실 복도에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거는 정말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매장이나 사후세계 같은 가치관이 있어서 수의도 입히고 꽁꽁 묶곤 하는데, 어차피 화장하면 말짱 꽝이잖아요. 어차피 화장할 거면 내가 원하는 옷을 입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장례식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오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사전 장례식을 하고 진짜 장례식은 가족끼리 조용하고 간단히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 죽음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혼자 죽는 것’에 대해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해요. 더군다나 요즘 싱글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잖아요. 결혼을 했어도 사별해서 혼자 남을 수 있고, 가족이랑 같이 살아도 가족들이 나를 24시간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죽는 순간에는 누구나 혼자일 수 있어요.
저도 아들이랑 같이 사는데 아들도 일하느라 바쁘고 24시간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혼자 죽는다는 점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강연할 때 항상 말해요. 나도 혼자 죽을 거고, 여러분도 혼자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Outro
죽음과 맞닿은 삶
- 죽음교육지도사로 활동하시면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거창하지 않아요. 그냥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더 편하게 이야기하고,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요.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연명치료 거부, 장기기증 등 사후에 가족들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강제집행되지 않는 것들도 있거든요.
가족과도 충분한 합의가 되고,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죽음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어요.
그리고 힘든 사람이 있다면 실질적인 도움까지 줄 수는 없어도 뒤에서나마 응원해 주고 싶고요.”
- 죽음을 생각하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더 잘 살 수 있어요. 누구나 겪는 것이 죽음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그 사실을 잊은 듯이 살아가요. 마치 자신은 안 죽을 것처럼. 그러다 보면 부질없는 것에 욕심을 부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장 한 시간 뒤의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다면 지금 주어진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